<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②>
왜 우리는 맹목적 추종에 빠지는가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라고 말하지만, 집단 속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쉽게 방향 감각을 잃는다.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다고 믿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저 사람이 앞서 가니까”라는 이유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결과가 바로 맹목적 추종이다.
맹목적 추종은 무지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하고 선의의 사람들, 책임감 있는 시민들조차 이 함정에 빠진다.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집단이 작동하는 방식에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을 원한다. 집단에서 이탈하는 것은 불안과 고립을 감수해야 하기에, 다수가 향하는 방향을 의심하기보다 따르는 편이 심리적으로 훨씬 편하다.
여기에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추종은 강화된다. 경제가 흔들리고, 사회가 불안하며, 미래가 보이지 않을수록 사람들은 강한 확신을 말하는 인물에게 끌린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언어로 설명해 주는 사람, “내 말만 따르면 된다”고 말하는 지도자는 위기의 시대에 매력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확신이 검증된 해법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일 때다.
맹목적 추종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사고의 위임이기 때문이다. 판단을 스스로 하지 않고 타인에게 맡기는 순간, 책임도 함께 넘겨버린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자고 해서”, “다수가 동의했으니까”라는 말은 개인을 면책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주사회의 가장 중요한 축인 시민의 책임을 허무는 논리다.
매스컴과 SNS 환경은 이 현상을 더욱 가속한다. 반복 노출된 메시지는 익숙함을 진실처럼 느끼게 만든다. 비슷한 생각만 보여주는 알고리즘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다수라고 착각하고, 반대 의견은 극단이나 적대 세력으로 규정된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은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며, 내부의 의심과 질문을 배신으로 간주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집단은 스스로 오류를 수정할 능력을 잃는다.
역사는 말해준다. 사회가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 반드시 악한 지도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흔했던 것은 의심하지 않는 다수, 질문을 멈춘 시민, 침묵을 선택한 중간층이었다. 맹목적 추종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작은 불편함을 외면하는 순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답은 거창하지 않다. 첫째, 지도자를 평가할 때 말이 아니라 과정과 태도를 보아야 한다. 비판을 허용하는가, 제도를 존중하는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다수의 의견과 옳은 판단을 구분할 줄 아는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다수는 힘이지만, 진실의 보증서는 아니다. 셋째,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시민을 보호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사회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처음 의심을 제기한 소수였다. 민주주의는 추종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판단하는 시민, 의심할 줄 아는 국민 위에서만 작동한다. 우리가 맹목적 추종에 빠지는 이유는 나약해서가 아니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 연쇄를 끊는 일은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오늘 한 사람이 던지는 조용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정말 그 길이 맞는가.” 끝.
<다음 칼럼 예고>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③> “비판하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구한다”
<관련칼럼>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①> 국민들이 ‘앤트밀 현상’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https://www.kjbn.kr/mobile/article.html?no=75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