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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지역 민원에 흔들리는 특별시, 출범도 전에 원칙을 잃을 것인가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지역 민원에 흔들리는 특별시, 출범도 전에 원칙을 잃을 것인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수십 년간 갈라져 있던 광주와 전남이 하나의 행정공동체로 묶이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그러나 거대한 출범의 기대감 이면에는 그에 못지않은 시민들의 서늘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우려의 본질은 단순하다. 통합특별시의 백년대계를 설계해야 할 결정적 시기에, 정당한 '원칙'보다 지역의 '요구'가 앞서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나주에서 열린 서부권 당선인 업무공유회에서 무안군수는 무안청사를 주청사로 확정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민형배 당선인은 "서남권이 원한다면 특별시장이 무안청사에 상근하고 기획·예산·인사 기능을 무안청사로 배치할 수 있다"는 취지로 화답했다. 불과 하루 전, 인수위원회가 동부청사를 법적 주청사로 두고 무안청사와 광주청사를 기능별로 분산 활용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한 직후였다.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통치권자의 핵심 원칙이 단 하루 만에 민원에 밀려 요동친다면, 앞으로 4년 동안 통합특별시는 과연 어떤 기준과 철학으로 운영될 것인가.

 

통합은 시작보다 유지가 수백 배는 더 어렵다. 특히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동부권, 서부권, 광주권이라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역사적 맥락을 가진 지역들이 하나의 행정체계로 결합하는 전례 없는 실험이다. 이러한 다극체제 구조에서 배를 침몰시키지 않고 순항하게 만드는 유일한 닻은 오직 '원칙'뿐이다.

 

원칙은 갈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수단이 아니다. 갈등이 폭발했을 때 이를 공정하게 해결하는 최후의 기준선이다. 만약 이 기준선이 정치적 타협이나 지역의 압박에 의해 흐려진다면, 특별시의 모든 정책 결정은 소모적인 힘겨루기로 변질된다. 오늘은 무안의 요구에 흔들리고, 내일은 순천의 목소리에 밀리며, 모레는 광주의 눈치를 본다면 통합특별시는 고도의 행정조직이 아니라 각자도생을 꿈꾸는 '지역 이해관계의 느슨한 연합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통합시장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표심을 의식한 인기 관리가 아니다. 고도의 갈등 관리 능력이다. 갈등 관리란 모든 사람의 떼쓰기를 골고루 수용하는 '기계적 배분'이 아니다.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을 세우고, 세운 기준은 그 어떤 풍파가 불어도 끝까지 사수하는 뚝심이다. 지도자가 지역의 민원을 경청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귀를 열어 듣는 것과 중심을 잃고 끌려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원한다면 해주겠다"는 식의 발언이 시그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지도자의 결정이 철학이나 원칙이 아니라, 집단적 압력의 크기에 따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위험한 전례를 남기기 때문이다. 특별시장은 특정 권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이 아니다. 광주와 전남 전체 시민의 미래를 짊어진 최고 책임자다. 그렇기에 모든 결정의 준거는 특정 지역의 목소리가 아니라, 특별법의 정신과 전체의 공익이어야 한다.

 

특별법은 이미 동부청사, 무안청사, 광주청사를 균형 있게 활용하도록 제도적 틀을 규정하고 있다. 모든 논의는 이 법적 원칙이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법과 원칙이 외풍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어야지, 지역 민원이 원칙을 무너뜨리는 창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금 당선인에게 필요한 것은 표를 의식한 새로운 약속의 남발이 아니라, 기존 원칙의 엄격한 재확인이다. 지금이라도 청사 기능 배치와 행정 운영의 기준을 시장의 언어로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

 

"특별시의 모든 결정은 오직 특별법의 취지와 통합의 대원칙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이 서슬 퍼런 한마디만이 표류하는 지역 민심을 다잡고 시민들에게 진정한 신뢰를 줄 수 있다.

 

통합특별시의 성공은 어느 지역이 떡 하나를 더 가져가느냐의 제로섬 게임에 있지 않다. 어떤 공고한 원칙 아래서 하나의 유기체로 기능하느냐에 달려 있다. 출범을 불과 며칠 앞둔 지금, 시민들은 청사의 물리적 위치보다 더 본질적인 것을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권력의 키를 잡은 지도자가 지역 이기주의 앞에 흔들리는가, 아니면 대의를 위해 흔들리지 않는가.

 

역사는 통합을 호기롭게 선언한 사람이 아니라, 무수한 갈등을 이겨내고 통합을 끝내 성공시킨 지도자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성공의 시작은 언제나 예외 없는 원칙의 고수였다. 흔들리는 특별시는 출범도 전에 신뢰라는 가장 큰 자산을 잃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앞의 갈등을 덮으려는 임기응변의 속도가 아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확고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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