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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은혜는 기억하되, 대의(大義)는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 보은과 원칙의 갈림길에 선 이들에게 -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은혜는 기억하되, 대의(大義)는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 보은과 원칙의 갈림길에 선 이들에게 -

 

사람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 기회를 열어 준 상사, 자신의 능력을 믿고 이끌어 준 선배의 은혜는 오래 기억해야 한다. 받은 도움을 잊지 않는 것은 인간다운 품격이며,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소중한 덕목이다.

 

 

그러나 은혜를 기억하는 것과 그 사람의 모든 요구를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직장에서 도움을 준 상사가 훗날 규정과 공정성에 어긋나는 일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보은과 대의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한다.

 

이때 반드시 분명히 해야 할 원칙이 있다.

 

은혜는 사적으로 갚되, 공적인 판단까지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상사가 과거에 베푼 도움은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은혜가 부당한 지시를 따르게 하는 청구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은혜를 이유로 규정을 어기고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조직의 이익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보은이 아니라 사적 관계를 공적 영역에 끌어들인 정실이 된다.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너를 얼마나 도와주었는데 이 정도도 못 해주느냐”는 말이다. 진정한 은혜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과거의 도움을 내세워 상대방의 양심과 판단을 구속하려 한다면, 그 순간 은혜는 호의가 아니라 빚이 되고 신뢰는 거래로 변한다.

 

물론 현실의 직장생활은 원칙만으로 간단히 설명되지 않는다.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면 ‘배은망덕한 사람’, ‘의리 없는 부하’, ‘조직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인사상의 불이익이나 관계의 단절을 걱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마지못해 따르게 된다.

 

그러나 부당한 요구에 한 번 동조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첫 번째 타협은 두 번째 요구의 근거가 되고, 작은 침묵은 더 큰 부정의 입구가 된다. 마침내 문제가 드러났을 때 지시한 사람은 책임을 피하고, 실행한 사람만 기록과 책임 앞에 홀로 남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맞서기보다 정중하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그동안 베풀어 주신 도움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규정과 조직의 원칙에 어긋나 제가 따르기 어렵습니다.”

 

이 말은 배신의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과 상사, 조직을 함께 지키기 위한 충언이다. 필요하다면 공식적인 절차를 요청하고, 중요한 지시는 문서로 확인하며,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조직의 규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원칙을 지키는 일에는 용기뿐 아니라 자신을 보호할 지혜도 필요하다.

 

보은은 인간관계의 미덕이지만, 대의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은혜를 갚기 위해 대의를 저버린다면 한 사람과의 관계는 지킬지 몰라도 수많은 사람의 신뢰를 잃게 된다. 반대로 원칙을 지키면서도 과거의 도움을 잊지 않는다면 감사와 양심을 함께 지킬 수 있다.

 

우리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가장 훌륭하게 보답하는 길은 그 사람의 잘못까지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가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 함께 멈춰 서고, 더 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진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은혜는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러나 양심까지 빚으로 내주어서는 안 된다. 보은은 사람을 향해야 하지만, 공적인 판단은 언제나 원칙과 대의를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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