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권력의 비용과 비서의 경계
- 문고리 권력을 넘어 전문적 파트너로 -
권력은 무한하지 않은 ‘한계 자원’이다
권력이란 자신의 의지를 타인이나 조직에 관철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권력은 절대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다. 상대방과의 관계, 조직의 신뢰, 제도적 정당성 속에서 비로소 작동하는 상대적 힘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최고책임자와 측근, 또는 비서진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는 없다. 그 이면에는 권력의 성격과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 권력을 지나치게 행사하면 반발이 생기고, 사적으로 사용하면 정당성이 훼손되며, 권한의 경계를 넘어서면 조직적 저항을 불러온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은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라, 잘못 사용할수록 신뢰와 함께 소진되는 일종의 ‘한계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고책임자의 권력이 측근을 통해 사적으로 유통되거나, 그 주변에 청탁과 부탁이 몰리기 시작하면 권력의 비용은 더욱 커진다. 결국 리더십의 기반인 신뢰와 정당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
최고책임자와 비서의 관계 역시 이러한 ‘권력의 한계’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최고책임자의 절제, 권력을 오래 쓰게 하는 힘
비서는 최고책임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신뢰가 중요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분명한 경계도 필요하다.
최고책임자가 비서에게 직무 범위를 넘어선 사적인 지시를 반복하거나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불필요한 권력 비용이 발생한다.
비서를 개인의 ‘수족’이나 사적 심부름을 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순간, 최고책임자 스스로 자신의 공적 권위를 훼손하게 된다. 비서의 직무 전문성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조직 구성원들에게는 특수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그 결과 불필요한 오해와 도덕적 위험까지 커진다.
그래서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권력을 갖는 능력이 아니라 권력을 절제하는 능력이다.
공적인 권한은 공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사적 관계와 직무 관계를 구분해야 한다. 특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분명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비서를 대하는 최고책임자의 절제된 태도는 개인적 미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리더십의 정당성을 보호하고 조직의 신뢰를 지키는 첫 번째 안전장치다.
가까움이 길어질수록 더 필요한 경계
더 경계해야 할 것은 관계의 장기화다.
최고책임자와 비서가 오랫동안 함께 일하다 보면 업무상 신뢰가 깊어진다. 이것은 조직 운영에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밀착은 또 다른 위험을 낳는다.
비서는 최고책임자의 일정과 업무뿐 아니라 의사결정 방식, 인간관계, 취약한 부분, 때로는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될 민감한 정보까지 알게 된다. 이러한 정보가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중될 경우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한다.
문제는 정보를 많이 아는 것 자체가 아니다. 그 정보가 하나의 영향력으로 전환될 때다.
“내가 최고책임자를 가장 잘 안다”, “내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렵다”, “내 말을 곧 최고책임자의 뜻으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인식이 형성되는 순간 비서의 직무는 조력자의 영역을 넘어 권력의 영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최고책임자 역시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 신뢰는 필요하지만 신뢰와 견제는 양립할 수 있다.
오히려 오래된 관계일수록 역할과 권한의 경계를 더욱 분명하게 해야 한다.
‘문고리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비서가 권력화되는 과정은 대개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최고책임자에 대한 접근이 특정인에게 집중되고, 정보와 일정이 한 사람을 통해서만 전달되며, 조직 구성원들이 공식 조직보다 비서를 먼저 찾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형성된다.
내부 구성원이나 외부 이해관계자들 역시 최고책임자에게 직접 접근하기 어려워질수록 가까운 사람을 찾게 된다. 부탁과 청탁이 비서에게 몰리는 이유다.
이때 비서가 최고책임자와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자신의 권력으로 착각하는 순간 이른바 ‘문고리 권력’이 만들어진다.
“최고책임자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판단을 전달하고, 보고의 순서를 조정하며,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실상 결정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비서의 보좌 기능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 위험한 것은 조직 구성원들이 비서의 말을 최고책임자의 의중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이다.
그 순간 공식적인 지휘·보고 체계는 약화되고 비공식 권력이 조직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문고리 권력은 비서 한 사람만의 문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고책임자가 공식 시스템보다 개인적 신뢰에 의존할 때 함께 만들어진다.
따라서 이를 차단하는 책임 역시 최고책임자에게 있다.
비서는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결정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바람직한 비서의 역할은 분명하다.
최고책임자가 정확한 정보를 제때 받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일정을 관리하고, 정보를 정리하고, 보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며, 최고책임자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지원과 대리는 다르다.
비서는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는 있어도 대신 결정해서는 안 된다.
정보를 정리할 수는 있어도 유리한 정보만 골라 전달해서는 안 되며, 접근을 관리할 수는 있어도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사람과 정보를 차단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유능한 비서에게 필요한 덕목은 단순한 충성심이 아니다.
전문성, 판단력, 보안 의식, 공정성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영향력을 스스로 절제할 줄 아는 직업윤리다.
좋은 비서는 자신이 권력자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가까울수록 더 말을 아끼고, 더 원칙을 지키며,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성이다.
사적 측근이 아니라 전문적 파트너로
최고책임자와 비서의 바람직한 관계는 사적인 친밀감이나 무조건적인 충성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
그 관계의 중심에는 공적 신뢰와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최고책임자는 비서를 개인적 비밀을 공유하는 측근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전문 조력자로 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공적 거리를 유지하고 특정 비서에게 정보와 접근권이 독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서 역시 최고책임자와의 가까운 관계를 자신의 지위나 영향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비서 직무의 진정한 가치는 권력을 대신 행사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데 있으며, 말할 수 있어도 말하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도 행사하지 않는 절제 속에 있다.
때로는 행사하지 않는 권력이 가장 큰 신뢰를 만든다.
시스템을 지키는 ‘절제의 미학’
권력은 무한하지 않다.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지고 특정 개인에게 정보와 영향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순간, 권력은 외부에서가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약해지기 시작한다.
오랜 관계에서 오는 익숙함도 마찬가지다. 신뢰라는 이름 아래 경계가 사라지면, 가까움은 장점이 아니라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최고책임자와 비서 사이에 필요한 것은 그림자 같은 사적 충성이 아니다.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공적 시스템을 지키는 건강한 거리와 전략적 경계다.
최고책임자는 권력 행사를 절제하고, 비서는 대리 권력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최고책임자는 비서를 사적 측근이 아니라 전문적 조력자로 존중하고, 비서는 가까움을 권력이 아닌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비서는 문고리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문고리가 권력이 되지 않도록 지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좋은 지도자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없어도 원칙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조직을 만드는 사람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권력은 소진되지 않고, 리더십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