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8 (목)

  • 맑음동두천 11.3℃
  • 맑음강릉 14.9℃
  • 맑음서울 14.9℃
  • 맑음대전 12.6℃
  • 맑음대구 13.6℃
  • 맑음울산 15.0℃
  • 맑음광주 15.5℃
  • 맑음부산 17.4℃
  • 맑음고창 10.3℃
  • 맑음제주 18.5℃
  • 맑음강화 10.2℃
  • 맑음보은 8.1℃
  • 맑음금산 9.7℃
  • 맑음강진군 ℃
  • 맑음경주시 9.9℃
  • 맑음거제 14.0℃
기상청 제공

실시간 뉴스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기 전에, 국가가 먼저 약속해야 한다

― 저출산 시대, 청년의 미래와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국가의 결단 ―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기 전에, 국가가 먼저 약속해야 한다

― 저출산 시대, 청년의 미래와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국가의 결단 ―

 

우리나라의 2025년 합계출산율은 0.80명이다. 숫자만 보면 그저 하나의 인구통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숫자 뒤에는 결혼을 미루는 청년, 아이를 포기하는 부부, 문을 닫는 학교, 사람이 사라지는 지역, 그리고 점점 무거워지는 미래세대의 부담이 함께 놓여 있다.

 

 

저출산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많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의 방향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가 아니라,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최소한의 출산과 양육이 자신과 국가의 미래를 지키는 길임을 체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 아이를 낳지 못하는 청년을 탓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청년들은 부모 세대와 전혀 다른 현실을 살아간다. 취업하기 어렵고, 취업해도 직장의 안정을 장담할 수 없다. 집 한 채 마련하기는 아득하고, 결혼과 동시에 막대한 주거비·양육비·교육비가 기다린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태롭지만, 아이를 키우려면 누군가는 경력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적 모순에 부딪힌다.

 

그들에게 출산은 단순한 삶의 변화가 아니다. 향후 20년 이상 지속될 경제적 부담과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거대한 결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현재를 즐기며 살겠다”고 말하는 젊은이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 속에는 쾌락보다 미래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더 깊게 스며있다.

 

“내 미래도 확신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한 아이의 삶까지 책임지겠는가.”

우리는 먼저 이 아픈 질문에 답해야 한다.

 

◆ 그러나 최저출산의 무너짐은 결국 청년 자신의 미래를 위협한다

 

그렇다고 저출산을 순수한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둔 채 방치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출산율 유지는 국가의 존립뿐만 아니라, 청년 세대 스스로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사회를 유지할 '사람'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소비자가 있어야 기업이 유지되고, 세금을 내고 연금과 복지제도를 떠받칠 인구가 있어야 사회안전망이 작동한다. 아이들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어린이집과 학교가 문을 닫는다. 이어 대학과 상권이 무너지고, 병원과 대중교통 등 필수 인프라가 사라지며 지역공동체는 형해화된다.

 

◆ 더 심각한 것은 세대 간 부담의 폭발이다.

 

오늘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20~30년 후 존재하지 않는 노동자이자 납세자다.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면, 남아 있는 청년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연금·의료·돌봄의 짐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다. 결국 저출산의 여파를 가장 오랫동안, 가장 직접적으로 받게 되는 당사자는 역설적으로 지금의 젊은 세대다.

 

개인의 출산 포기는 현 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자구책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출산을 포기하여 인구 기본 기반마저 무너진다면, 그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청년 자신의 불안정한 노후와 고립이다.

 

◆ 가족의 축소가 가져올 외로움과 고립

 

경제적 문제 너머의 삶의 질도 생각해야 한다. 가족의 축소는 개인의 사회적 관계망을 극도로 좁힌다. 부모가 병들었을 때 함께 짐을 나눌 형제가 없고, 명절에 온기를 나누거나 나이가 들어 서로를 살펴줄 가까운 혈연 공동체가 사라진다.

 

자녀가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는 옛날식 효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녀의 존재가 행복을 무조건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을 연결하던 가장 근본적인 공동체인 가족이 해체 수준으로 축소될 때, 그로 인한 개인의 고립과 외로움을 과연 국가나 시스템이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인구통계표의 숫자 자체가 아니다. 사람이 줄어들며 함께 사라질 따뜻한 관계와 삶의 안전망이다.

 

◆ 국가가 먼저 약속하고, 미래의 희망을 증명하라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청년에게 당위론적 애국심을 호소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먼저 “최소한의 출산과 양육이 청년 삶의 위험이 아닌 축복이 되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신뢰를 주어야 한다. 주거와 일자리 불안을 낮추고, 출산이 경력 단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보육의 주체를 부모 개인에서 사회 전체로 전환하고,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을 털어낼 교육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출산과 양육을 단순한 개인의 소비가 아닌 '공동체를 유지하는 핵심적 사회 기여'로 전면 인정하는 제도적 보상이 필요하다.

 

◆ 필자는 그 구체적 방안으로 ‘경제활동기여연금제’를 제안한다.

 

출산과 양육을 통해 미래의 납세자와 공동체 구성원을 키워낸 사회적 기여를 인정하여, 부모의 노후 연금에 이를 합리적으로 반영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재정과 기준은 사회적 합의를 거치면 된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청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가 아니다. “당신이 아이를 키우며 감당한 노고는 결국 청년 자신과 우리 모두의 미래를 구하는 일이었기에, 국가가 당신의 노후와 삶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로

 

저출산 극복에 단 하나의 만능 해법은 없다. 주거, 고용, 교육, 돌봄, 일·가정 양립, 노후보장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그 바탕에 깔려야 할 원칙은 명확하다. 최저출산 유지는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도, 청년 개인의 삶과 노후를 위해서도 반드시 달성해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라는 점이다.

 

청년에게 희생만을 요구해서는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저출산은 청년이 만든 위기가 아니라 기성세대와 사회구조가 낳은 결과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고, 청년들이 안심하고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젊은 세대가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내 삶을 무너뜨리는 위험이 아니라, 나와 아이 모두의 미래를 다지는 일임을 믿는다. 이 사회라면 함께 미래를 꿈꾸어도 좋겠다.”

 

저출산 대응의 진정한 출발점은 바로 그 '믿음'을 되찾아주는 국가의 약속에서 시작된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