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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역사공원’, 명칭과 본질의 무게를 생각한다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정율성 역사공원’, 명칭과 본질의 무게를 생각한다

 

지역 출신의 예술가나 문화적 인물을 발굴하고 기념하여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풍부하게 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한 인물의 예술적 성취를 조명하고 이를 전시·교육·문화교류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특정 인물을 기념하는 공간을 조성하면서 그 명칭에 ‘역사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상당한 공공재정을 투입하는 문제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논란이 되어 온 ‘정율성 역사공원’ 문제 역시 단순히 한 음악가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역사적 인물을 어떤 방식으로 공적으로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공재정과 공공 명칭을 어떠한 기준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있다.

 

1. ‘역사공원’이라는 명칭에는 공공적 판단이 따른다.

 

‘역사공원’이라는 명칭은 일반적인 휴식공간이나 문화시설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법률적 의미를 넘어 사회적·상징적 의미에서 본다면, 특정 인물의 이름을 붙인 역사공원은 그 인물의 삶과 행적을 지역사회가 중요한 역사적 기억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메시지를 담게 된다. 따라서 공공기관이 누구를 어떠한 이름으로 기념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하고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정율성은 음악가로서 일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중국 공산혁명 과정에서의 활동과 중국 인민해방군 관련 음악, 북한과 관련된 음악 활동 등 오늘날 대한민국의 역사적·정치적 맥락에서 논쟁이 될 수밖에 없는 요소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필요한 것은 그의 음악적 재능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그의 음악적 성취를 소개하는 것과,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가 그의 이름으로 ‘역사공원’을 조성하여 공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같은 문제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예술가의 작품과 생애를 연구하고 소개하는 것은 문화의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인물의 이름으로 역사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공공의 기억과 역사적 평가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두 문제는 구분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2. 공공재정에는 더 높은 수준의 명분이 필요하다.

 

공공예산은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의 취향을 실현하기 위한 자금이 아니다. 시민과 국민이 공동으로 부담한 재원이기 때문에 그 사용에는 명확한 공익성과 사회적 정당성이 요구된다. 특히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는 사업이라면 단순히 “지역 출신 인물”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인물이 지역과 국가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공과(功過)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기념의 방식과 규모가 적절한지, 시민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역사적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인물을 대상으로 상당한 공공재정을 투입하려 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공공사업은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법적 가능성 위에 역사적 타당성, 재정적 적절성, 시민적 공감대가 더해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공공사업으로서 지속적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3. 문화적 평가와 역사적 기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율성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모든 문제를 이념적 찬반으로만 나누는 태도다.

 

한쪽에서는 정율성의 모든 음악적 성취를 부정해서는 안 되며, 다른 한쪽에서도 그의 예술적 성취를 이유로 그의 전체 역사적 행적에 대한 평가까지 생략해서는 안 된다.

문화적 평가와 역사적 평가는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율성의 음악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의 생애를 한중 문화교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다룰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그의 이름을 내건 ‘역사공원’ 조성의 당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개하는 것과 기념하는 것은 다르고, 기록하는 것과 추앙하는 것도 다르다. 공공기관이라면 바로 이 경계를 세심하게 구분해야 한다.

 

4. 명칭과 사업 성격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무조건적인 철거나 배척의 논리로 접근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사업의 목적과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정율성의 음악적 활동과 한중 문화교류의 역사를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역사공원’이라는 명칭 대신 음악·문화교류·지역문화사 등을 중심으로 한 공간으로 성격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생애를 다룰 경우에도 음악적 성취만을 부각할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정치적 선택, 중국과 북한에서의 활동까지 함께 설명해야 한다. 기념시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교육·전시 공간이라면 논의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면 사업의 규모와 공공재정 투입 자체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는 것도 지방자치단체가 취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선택이다.

 

5. 역사적 인물을 기념할수록 기준은 더 엄격해야 한다.

 

역사는 어느 한 세대나 특정 지역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특히 공공기관이 국민과 시민의 세금으로 역사적 인물을 기념할 때에는 “그 인물이 유명한가” 또는 “지역과 인연이 있는가”만을 물어서는 안 된다. 왜 이 인물을 공공이 기념해야 하는가.

 

∙그 기념 방식이 대한민국의 역사적 가치와 충돌하지 않는가.

∙시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는가.

∙다른 역사적 인물과 비교했을 때 공공재정 투입의 우선순위는 타당한가.

이 질문에 설득력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정율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의 음악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의 정치적·역사적 행적을 더 무겁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공기관은 어느 한쪽의 평가를 서둘러 공식화하기보다 더욱 신중해야 한다.

 

◆맺음말 — 공공의 기억일수록 신중해야 한다.

 

나는 정율성이라는 한 인물을 우리 역사에서 지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고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에 기록하는 것과 공공이 기념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특정 인물의 음악과 생애를 연구하고 소개하는 일과, 국민의 세금으로 그의 이름을 내건 역사공원을 조성하는 일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관계 기관은 이 차이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정율성 역사공원’이라는 이름이 과연 사업의 본질에 부합하는지, 그 인물을 대한민국의 공공 역사공간을 통해 기념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시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지를 다시 한번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공의 역사를 다룰수록 기준은 높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세금을 사용할수록 그 이유는 더 분명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적 논쟁을 이념적 대립으로 소모하지 않고, 성숙한 공공의 판단으로 풀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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