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개혁은 속도가 아니라 설득으로 완성된다
— 공론의 장을 넓혀야 개혁도 오래간다 —
개혁에는 때가 있다. 국민이 변화를 요구할 때 머뭇거리기만 한다면 그것 역시 정치의 책임 회피다. 그렇기에 개혁에는 과감한 추진력과 결단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개혁이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 바로 ‘설득’이다. 최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던진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론의 장이 무너지면 폭력의 장이 섭니다.” 그는 공론의 장에 들어선 이상 상대방을 힘으로 억압할 것이 아니라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석수나 숫자의 힘으로 다른 의견을 누르고 말조차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공론인가라는 던진 화두다. 필자 역시 과거 “불평은 러브콜이다”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정치적 진영을 떠나 반대와 불평의 목소리야말로 귀담아들어야 할 소중한 신호라는 의미였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은 중요하다. 모든 이가 끝까지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기에, 충분히 토론한 뒤에는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다수의 지지는 결정할 권한을 줄 뿐, 소수를 설득하지 않아도 될 면죄부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의석수가 많다고 해서 반대 의견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으며, 선거 승리가 모든 정책에 대한 자동적인 동의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힘이 클수록 더 많이 들어야 한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리더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힘이 아니라 ‘절제’와 ‘설득’이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기존 제도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뿐만 아니라, 그 변화로 인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까지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개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단순화하는 순간 토론의 공간은 사라진다. 반대 의견을 단지 기득권의 저항으로 치부하면, 그 안에 담긴 합리적인 우려마저 놓치게 된다. 반대 의견은 개혁의 적이 아니라, 개혁의 허점을 미리 알려주는 ‘경고등’이다. 좋은 목적이 과정의 부실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국정과제 역시 ‘무엇을 바꿀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중요하다. 듣고 설명하는 과정은 개혁을 늦추는 장애물이 아니라, 개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안전장치’다.
공론화와 설득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기존 방안을 수정해야 하고 일부를 양보해야 할 수도 있다. 정치 지도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지루한 시간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치러야 할 당연한 비용이다. 속전속결로 제도 하나를 통과시키는 것보다, 사회 구성원들이 “충분히 논의했고 내 의견도 반영되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일이 훨씬 어렵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다.
그동안 필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을 바라보며 ‘실적으로 말하는 리더십’을 강조해 왔다. 국정과 정치는 결국 국민의 삶을 얼마나 개선했는가라는 결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말보다 성과가 중요하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국정운영이 심화될수록 성과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가 떠오른다. 성과를 내는 리더십에서 한 걸음 나아가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리더십’이다.
특히 사회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제도 개혁이나 인사 문제일수록 더욱 그렇다. 인사의 경우 단지 “누구를 임명했는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왜 그 인재가 필요한지,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발탁했는지 국민에게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소통은 결정이 끝난 뒤 통보하는 것이 아니다. 결정하기 전에 듣는 것이 소통이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설명하는 것이 공론이며, 결정한 뒤 책임지는 것이 정치다.
개혁 추진자에게 가장 달콤한 소리는 지지자들의 환호다. 그러나 지도자가 진짜 귀 기울여야 할 소리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들이다. “왜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다른 대안은 없는가?”,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을 방해공작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답하고,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수정해야 한다. 그 수용과 조정의 과정을 거치며 개혁의 논리는 정교해지고 제도의 빈틈은 메워진다.
개혁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까지 설득해낼 때, 개혁은 비로소 한 정권의 단기 정책을 넘어 사회의 ‘불변하는 제도’로 자리 잡는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제도는 영속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되는 개혁,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마저 결과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개혁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다.
정부와 여당에 필요한 것은 개혁의 후퇴가 아니다. 꼭 필요한 개혁이라면 제대로 완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더 많이 듣고 더 끈질기게 설명해야 한다. 다수의 힘이 클수록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책 추진력이 강할수록 공론의 장을 넓혀야 한다.
정치는 상대를 굴복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속도는 성과를 앞당길 수 있지만, 설득은 그 성과의 수명을 연장한다.
좋은 개혁이 공론화 과정 때문에 조금 늦어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진짜 실패는 공론과 설득의 부재로 국민적 신뢰를 잃고 좌초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개혁보다 더 넓은 공론, 더 깊은 경청, 그리고 반대하는 이들에게까지 먼저 손을 내미는 끈질긴 설득이다. 다수는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것은 숫자가 아닌 설득과 신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