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암호화폐 시리즈 ②>
블록체인은 기술이고, 암호화폐는 화폐인가
지난 회에서 우리는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쟁이 왜 늘 가격과 속도의 질문에 갇히는지, 그리고 그 질문들이 왜 위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암호화폐 논의의 출발점으로 가장 자주 소환되는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혁신적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술의 가능성과, 그 기술 위에 만들어진 암호화폐가 화폐로 기능할 수 있는지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제2회에서는 이 두 가지를 분리해 묻고자 한다. 블록체인은 기술이고, 암호화폐는 과연 화폐인가.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블록체인 기술의 미래”다. 암호화폐를 비판하면 곧바로 기술 발전을 부정하는 사람처럼 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구분을 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기술이고, 암호화폐는 화폐를 자처하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이 둘을 동일시하는 순간, 논의는 흐려진다.
블록체인은 분산 원장이라는 기술적 개념을 바탕으로 데이터의 위·변조를 어렵게 만드는 장점을 지닌다. 이 기술은 금융을 넘어 행정, 물류, 의료, 공공 기록 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 가능성이 있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며, 발전의 여지가 충분하다. 문제는 이 기술 위에 만들어진 암호화폐가 과연 ‘화폐’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경제학적으로 화폐는 세 가지 기능을 갖는다. 교환의 매개, 가치의 저장, 그리고 가치 측정의 기준이다. 현재의 암호화폐는 이 중 어느 하나도 안정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가격 변동성이 극심해 교환 수단으로 쓰기 어렵고,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씩 오르내리는 자산이 가치 저장 수단이 되기도 힘들다. 가격 기준이 불안정하니 계산 단위로서의 역할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가 ‘미래 화폐’로 포장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많은 참여자들이 블록체인의 구조나 철학보다는 “얼마에 샀고, 얼마에 팔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둔다. 기술에 투자한다는 말은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기술 채택이 아니라 군중 심리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도 반복되어 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것은 곧바로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철도, 전기, 인터넷 역시 초기에는 과도한 기대와 거품을 동반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철도와 전기는 실물 기반의 인프라였고, 인터넷은 사용 가치가 빠르게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반면 암호화폐는 사용보다 거래가 먼저 확산되었고, 생활 속 필요보다 투자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기술이 목적이 되고, 화폐가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이 관계가 뒤집혀 있다. 기술은 명분이 되었고, 가격은 목적이 되었다. 이때 시장은 기술 발전을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왜곡시킨다. 투기적 자본은 단기 수익에는 민감하지만, 장기적 기술 축적에는 관심이 없다.
더욱이 화폐는 기술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화폐에는 신뢰가 필요하고, 그 신뢰의 최종 보증자는 언제나 국가였다. 법적 강제력, 과세 권한, 지급 보증 체계가 없는 화폐는 널리 통용될 수 없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에는 열려 있으면서도, 민간 암호화폐의 화폐화에는 일관되게 거리를 두고 있다.
지금 세계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화폐 실험은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국가는 기술을 버리지 않는다. 다만 화폐 주권을 기술 기업이나 시장에 넘기지 않을 뿐이다. 결국 블록체인은 국가의 품 안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의 암호화폐가 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암호화폐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기술의 미래에 투자하고 있는가, 아니면 가격의 변동성에 기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하지 않다면, 그 선택은 투자라기보다 베팅에 가깝다. 기술은 남지만, 투기는 사라진다. 역사는 언제나 그 방향으로 흘러왔다. 암호화폐 역시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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