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는 단식투쟁 16일째를 접어들어 생사를 다투고 있는 이 시점에 당 대표 “법률특보”라는 박균택 검사 출신 법률특보가 16일(토)“출판기념회”를 한다라고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당 대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여러가지 현안으로 단식농성 “16일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단식중] 이재명 당 대표 단식에 관하여 전 국민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중요한 상황에 당 대표 단식투쟁을 함께하고자 전국에 특보들도 릴레이 단식 천막농성으로 고통을 함께 하고 있는 있으면서 특보들은 병원에 실려가고 있는 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마당에 법률특보는 내년 총선을 위해 한가롭게 출판기념회 한다, 참으로 한심스럽기보단 개탄스럽다! 당 대표가 단식 농성중에 전국적으로 다른 특보들은 출판기념회를 잠정적 연기를 하고있는 판국에 법률특보는 한가롭게 책 장사를 하여 내년 총선을 대비하고 있다. 물론 출판기념회를 하고, 안 하고는 최종적으로 본인이 판단할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 상황은 출판기념회를 해야 할 상황은 안이다라고 특히 지역구뿐 아니라 전국에서 이구동성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들을 하고 있다. 오직 당 대표는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단식농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서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며 낭만적인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이 열렬히 사랑하기에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둘만의 사랑 보금자리를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 것이 그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실은 채 결혼이라는 배를 타고 긴 항해를 떠난다. [김희정 박사 부부 클리닉 "아름다운 동행상담센터" 소장] 그러나 영원하리라 믿었던 사랑의 보금자리 안에서 커플, 부부 관계는 한 해 두 해 거듭해 갈수록 어느 틈엔가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다. 말을 하면 통통 튕기며 나뒹굴다가 데굴데굴 살이 붙어서 결국은 말했던 자신에게 말로 되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이 경험은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열 번이 되면서 바라만 봐도 좋았던 연애 시절은 어디로 가고 없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어디서부터 삐걱되었는지 되새김질하고 리플레이 해 보지만 연애 때 그토록 좋아했던 그(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쳐다만 봐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그런 대상만이 내 앞에 있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런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 맞나?’ 라고 자책・후회・단념・포기의 단계를 지나 완
안향(安珦, 1243년 ~ 1306년 9월 12일)은 고려 후기 문신·학자·교육자다. 원래 이름은 안유(安裕)이다. 노년기에 안향(安珦)으로 개명했고 조선 문종의 피휘(避諱)로 안유(安裕)로 불린다. 교서랑, 동경유수, 집현전대학사 등을 역임했고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를 호종하여 원나라를 방문했다. 안유는 원나라에서 주자의 저서인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직접 필사하여 고려에 주자학을 최초로 소개했다. 공자(孔子)와 주자(朱子)의 화상(畵像)을 가지고 돌아와서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고 이제현, 백이정, 이조년 등 후학을 양성했다. 안유는 고려 충숙왕 때 문묘에 배향했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봉이 안유가 수학하던 숙수사(宿水寺) 터에 우리나라 최초로 백운동서원을 건립했다. 풍기군수 이황의 건의로 명종이 우리나라 최초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사액(賜額)을 내렸다. 정몽주(鄭夢周)는 경상도 영천 출신의 고려 말의 유학자이다.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 예문관제학, 수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신진사대부이다. 친원파를 배격하고 친명파가 되어 역성혁명을 반대하고 온건개혁을 주장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는 찬성하고 조선 개국에는 반대했다. 이성계 일파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 밑에 임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임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상처가 새로워진다. 못오는 님이면 이마음도 보낼것을 항구의 맺는 절개 목포의 사랑 1935년 조선일보의 민족문화 말살에 대응하며 조국애를 담은 애향가 현상모집에 20대 무명 시인 문일석의 목포의 사랑’이 당선됐다. 오케레코드사가 ‘목포의 눈물’로 제목을 바꾸고 손목인이 곡을 붙였다. 신인가수 이난영이 노래하여 한국에서 불멸의 명곡이 되었다. ‘목포의 눈물’은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들의 슬픔과 울분을 달래주는 노래가 되었고 일본인들의 사랑까지 받았다. = 조선 총독부에서 2절 가사가 ‘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 밑에’를 문제 삼아 불온한 기운이 있다며 금지곡 지정처분을 내렸다.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당시 ‘노적봉’에 이엉을 덮어 수백 만석의 쌀가마니를 쌓아둔 것처럼 위장하고 영산강에 횟가루를 뿌려 쌀뜨물처럼 속였다는 전설이 있다. 결국 세 그루의 동백이 있는 연못에 평안히 부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
해동18현 설총과 최치원 설총(薛聰)은 신라 중대의 유학자로 성골 진골 다음의 6두품 출신이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고 태종무열왕의 외손자이다. 불교에서 출가하여 환속하고 유교(儒敎)로 개종했다. 설총은 신문왕 때 국학에 입학했고 경덕왕 때 박사가 되었고, 중국 한자를 신라어로 표기하는 이두(吏讀)를 창시했고 꽃을 의인화하여 사치를 부리는 신문왕의 행실을 비판하는 한문소설 화왕계(花王戒)를 남겼다. 설총은 강수, 최치원과 더불어 신라 3대 명문장가로 꼽혔고 고려 현종 때 홍유후(弘儒侯)로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됐다. 원효 설총 일연 3인의 성현을 배출한 경북 경산에서 삼성현으로 추숭하고 있다. 최치원(崔致遠)은 신라 하대의 유학자로 6두품 출신이다. 12세에 당나라에 유학가서 6년 만에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였다.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당희종으로부터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 최치원은 귀국하여 49대 헌강왕으로부터 중용됐고 51대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상소하여 아찬(阿飡)에 임명됐다. 최치원은 한림학사 태산태수 천령태수 부성태수 등을 역임했고 최승우, 최언위와 함께 신라삼최 중
시골집 감나무는 한해는 많이 열렸다가 한해는 적게 열리기를 반복한다. 지나치게 많은 열매를 매달면 수세가 약해져서 수확량이 줄게 되고, 수확량이 적은 해에는 수세를 회복하여 다음 해에 수확량이 많아지게 되는 현상을 '해걸이' 라고 한다. 선조들은 마당 가장자리의 대추나무에 많은 대추가 열리게 하려고 염소 한 마리를 매어 놓았다고 한다. 대추나무에 고삐에 묶여있는 염소가 나무를 흔들어 괴롭히면 생명에 위협을 느낀 나무는 많은 열매를 번식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철학자 노자(老子)는 무위(無爲)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도덕경(道德经)을 남겼다. 노자는 선섭생자, 이기무사지(善攝生者, 以基無死地)라며 '섭생(攝生)을 잘하는 사람은 죽음의 땅에 들어가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노자는 자신의 생을 너무 귀하게 여기는 귀생(貴生)은 오히려 생이 위태롭게 될 수 있고, 자신의 생을 억누르는 섭생(攝生)이 오히려 삶을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와사보생(臥死步生)'의 교훈이다.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철학자 장자(莊子)는 노자(老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인물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장자는 친구인 혜시
(고려가요) 서경별곡과 쌍화점 고려가요3. 서경별곡 서경별곡 / 작가 미상 서경이 서울이지마는 새로 닦은 서경을 사랑하지마는 여의기 보다는 여의기보다는 길쌈베 버리고서리도 사랑해 준다면 사랑해 준다면 울면서 쫓겠나이다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서경별곡은 사랑하는 임과 이별하는 여인의 슬픈 심정을 읆은 고려가요이다. 지금의 평양인 서경에서 불린 노래이다. 악장가사(樂章歌詞)와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 수록되어 전한다. 조선 성조실록에 '서경별곡 같은 작품은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 종묘악(宗廟樂)으로 불가(不可)하다'고 기록됐다. 후렴구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는 북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로 음악의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첫째 단락은 님이 떠나신다면 베도 버리고 따라가겠다고 한다. 둘째 단락은 구술의 끈처럼 천년을 홀로 지낸다 해도 믿음은 버리지 않겠다고 한다. 세째 단락은 님을 싣고 떠나가는 뱃사공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평양은 고조선의 마지막 수도였던 왕검성으로 비정하며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였던 평양성이 위치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황폐해진 평양을 부흥시키기 위해 대도호부(大都護府)를 설치했다. 고려 3대 정종이 서경으로 천도하려다
(고려가요) 청산별곡과 가시리 고려가요1. 청산별곡 청산별곡(靑山別曲) / 작가 미상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성 얄라리얄라 가다 보니 불록한 술독에 독한 술을 빚는구나 조롱꽃 누룩이 나를 잡사오니 내 어찌 하리잇고 얄리얄리 얄랑성 얄라리얄라 청산별곡은 고려시대 무신정변 시기부터 대몽항쟁 시기까지 사이에 쓰여진 작자 미상의 고려가요이다.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와 조선 중종 때 편찬된 악장가사(樂章歌詞) 기록됐다. 1977년에 열린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이스라엘 민요 '밤에 피는 장미'에 고려가요 '가시리'의 가사와 '청산별곡'의 후렴구를 붙여 이명우가 '가시리'로 노래했다. SG워너비가 이명우의 '가시리'를 리메이크하여 불렀다. SBS 창사 25주년 특별기획극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하는 '옥룡이 나르샤'에서 떠돌이 검객이자 정도전의 호위무사인 이방지가 '가시리'와 '청산별곡'을 섞어 구슬프게 노래를 불렀다. 다래는 예로부터 즐겨 먹던 산과일 중의 하나이며 양다래는 중국이 원산이며 뉴질랜드 국조인 키위와 비슷하여 키위라고 부른다. 머루는 옛날 구황식물의 하나로 포도과 산포도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은 이순신 세종대왕 김구 유관순 안중근 등으로 나타난다 때에 따라서 박*리, 김*아, 박*성, 손*민, 조*필, 이*희, 유*석, B*S, 반*문 등 운동선수나 연예인 또는 정치인까지 존경하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종2품 3도 수군절도사로 나라를 구한 난세의 명장이자 성웅(聖雄)이며 사후에 정1품 영의정으로 추증됐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4대 임금으로 조선의 기틀을 다지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한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임금이다.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이봉창 의거와 윤봉길 의거를 지휘했다. 한국광복군을 창설했고 남북협상을 주도하다가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의 총격에 사망했다. 효창공원에 안중근 의사,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와 함께 묻혀 있다. 유관순은 이화학당 고등부에 재학 중에 천안으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3.1운동에 참여했다.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는 현장에서 순국했고 유관순은 구속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시신없는 묘지에 비석만 세워졌다. 안중근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항일의병에 투신했다. 하얼빈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
설시(舌詩) / 풍도(馮道)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감추면 안신처처뢰(安身處處牢) 몸이 어디에 있든지 편안하리라 풍도(馮道)는 인생살이가 입이 화근(禍根)임을 깨닫고 73세의 장수를 누리는 동안 입 조심 하고 혀를 감추고 말 조심을 처세의 근본으로 삼았기에 난세에서도 영달을 거듭한 것이다. 입을 조심하고, 혀를 조심하고, 말을 삼가하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구한 진리이다. 심신(心身)이 편안한 삶은 말을 삼가하는 것이다. 풍도(馮道)는 882년 태어나서 954년 사망하여 73세까지 장수한 정치가이다. 풍도는 청렴하고 검소했고 지혜가 많았다. 후당, 후진, 요, 후한, 후주 등 다섯 왕조에서 열한 명의 군주를 섬겼다. 30년 벼슬 중에서 20년 동안 네 왕조의 재상을 역임했다. 875년 환관들의 수탈과 횡포에 저항하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당나라는 멸망의 길을 재촉했다. 907년 주전충이 당나라 마지막 황제인 9대 애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후량을 건국하여 오대십국 시대(五代十國 時代)가 시작했다. 풍도는 이존욱이 후당(後唐)의 초대 황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김부식이 편찬한 국보 322-1호, 제322-2호 및 보물 제722호 삼국사기는 일연이 편찬한 제306-1호, 제306-2호, 제306-3호 삼국유사와 더불어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감수국사 김부식을 필두로 참고(參考) 8명(최산보, 이온문, 허홍재, 서안정, 박동계, 이황중, 최우보, 김영온)과 관구(管句) 2명(김충효, 정습명)이다. 김부식이 편찬의 주역으로 10명의 편수관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간(臺諫) 출신들이 많고, 김부식도 대간 계통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삼국사기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으로 사회가 동요하자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고려 인종의 명으로 김부식이 1145년(인종 23년) 완성했으며, 1174년에 송나라에 진상되기도 했다. 삼국사기는 기전체로 〈본기(本紀)〉, 〈연표(年表)〉, 〈지(志)〉, 〈열전(列傳)〉으로 구성되었으며,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의 흥망성쇠의 정사를 기술한 역사서이다. 삼국사기는 유교적 사대주의 관점에서 중국을 중심에 두고 서술했다. 신라 위주로 기술하여 백제의 기록은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누락했다. 고조선, 동예, 옥저, 부여, 삼한, 가야, 발해 등의
(유학 특집) 4성 증자와 자사 4성 증자(曾子) 안연(顔淵)는 32세에 요절했고 염백우(冉伯牛)는 병에 걸려 사망했다. 민자건(閔子騫)은 제자를 두지 않았다 재아(宰我)는 제(齊) 나라에서 반란에 연루되어 살해됐다. 계로(季路)는 위(衛) 나라에 왕위 계승에 휘말려 살해됐다. 자장(子張)은 고향인 진(陳) 나라로 돌아가 활동했다. 자공(子貢) 자하(子夏) 자유(子游)는 3년상이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염유(冉有)는 위(衛) 나라에 남아 권력을 향유했다 결국 증자(曾子)가 공자의 적통이 되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를 따라 진(陳), 채(蔡)에 갔던 사람은 이제 내 곁에는 한 사람도 없다. (子曰從我於陳蔡者皆不及門也)" 공자와 더불어 진(陳) 나라와 채(蔡) 나라에 동행했던 제들을 선정하여 증자(曾子)는 공문십철(孔門十哲)에 포함되지 않았다. 증자(曾子)는 전국시대 노(魯) 나라 산둥성 출신의 사상가로 이름은 증삼(曾參)이고 자는 자여(子輿)이며 존칭으로 증자라고 부른다. 증자는 공자보다 46세 연하의 제자로 제자 중 가장 존경을 받았다. 공자 사후 유가의 유력한 일파를 형성했다. 증자는 세계의 모든 것이 결국 정신적인 것으로 환원 가능하다며 정신을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