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ㅣ 오피니언 리더는 진영의 나팔수인가, 국민의 길잡이인가 영향력이 커질수록 책임도 커진다 비판은 자유지만 사실은 정확해야 한다 국가 발전보다 진영 논리가 앞설 때 지지 받지 못한다 민주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인도, 언론인도, 평론가도, 유튜버도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기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그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시청하는 방송과 유튜브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는 단순한 개인 의견이 아니라 사회적 파급력을 가진 메시지가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정치인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유튜버와 평론가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여론을 형성하고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선거 결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문제는 이러한 영향력이 객관적 사실과 균형 잡힌 시각에 기반하지 않고 특정 진영의 이해관계에 치우칠 때 발생한다. 비판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다. 대통령도, 정당도, 국회도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의 목적은 국가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있어야 한다. 특정 인물에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골프나 파크골프 라운드를 하다 보면 눈앞에 곧게 뻗은 일직선 코스만 마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왼쪽으로, 때로는 오른쪽으로 굽이치는 흥미진진한 코스를 만나게 되죠. 이처럼 휘어진 형태의 홀을 골프에서는 보통 '도그렉(Dogleg) 홀'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최근 파크골프계에서는 이를 '바나나 홀' 이라는 다소 귀엽고 직관적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지형을 두고 왜 이런 서로 다른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요? 그 속에 담긴 흥미로운 유래와 시대적 변화를 짚어봅니다. ◆클래식 골프의 유산: '도그렉(Dogleg)'의 직관성 골프에서 쓰이는 '도그렉'이라는 용어의 유래는 단어 그대로 '개의 뒷다리(Dog's leg)' 에서 왔습니다. 시각적 닮은꼴: 개의 뒷다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발목과 무릎 사이 관절 부위가 한 번 꺾여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독특한 각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코스 설계와의 만남: 골프 코스 설계가들은 티샷이 떨어지는 지점(IP 지점)을 기준으로 좌측이나 우측으로 꺾이는 홀의 형태가 이 개의 뒷다리 모양과 완벽하게 닮았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오랫동안 이 용어는 골퍼들에게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정의는 왜 이렇게 늦게 오는가 - 선관위 채용비리와 사법 신뢰의 문제 -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영국의 법학자 글래드스턴이 남긴 이 말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사법 불신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채용비리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고, 선거의 공정성을 책임지는 기관이 선거관리위원회다. 그런데 그 선관위에서 수백 건의 채용 비리 의혹이 제기되었고, 감사와 수사가 진행된 지 수년이 흘렀음에도 일부 핵심 사건은 아직도 1심 재판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국민들은 묻고 있다. ◆"도대체 정의는 언제 오는가?“ 공정을 심판하는 기관이 공정을 잃었을 때 채용은 국민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다. 특히 청년들에게 채용은 단순한 취업이 아니라 미래를 결정하는 출발선이다. 밤을 새워 공부하고, 자격증을 준비하며, 수많은 경쟁을 뚫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공정한 기회가 보장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특정인의 자녀가 특혜를 받아 채용되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순간 시험은 경쟁이 아니라 형식이 되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선관위 독립성과 책임성 02> 선관위는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 국민의 참정권을 위협한 자는 책임져야 한다 -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어디인가. 국민은 법원을 믿고, 국회를 감시하며, 정부를 평가한다. 그러나 선거만큼은 선거관리위원회를 믿는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며, 선관위는 그 출발점을 지키는 헌법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선관위의 모습은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선거를 관리해야 할 기관이 선거를 걱정하게 만들었고, 공정성을 보장해야 할 기관이 오히려 신뢰를 흔들어 놓았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중대한 국가적 사고이다. ◆ 선거철에 176명이 휴직한 조직 국가적 대사인 선거를 앞두고 선관위 직원 176명이 휴직 상태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선관위 전체 인원의 약 6%에 해당하는 숫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온 관행이었다는 점이다. ◆ 선거는 선관위가 존재하는 이유다. 군인이 전쟁 중 부대를 떠나고, 소방관이 대형 화재 직전에 자리를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올해 개최된 제71회 현충일 추념식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기억하고, 기록하고,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숭고한 주제 아래 엄수되었습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6월이지만, 올해의 슬로건은 유독 우리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엄중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자신을 던진 이들을 향한 예우는 단순한 일회성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되며, ‘기억’과 ‘기록’, 그리고 완전한 ‘책임’의 삼각축이 완성될 때 비로소 국가의 품격이 바로 서기 때문입니다. ◆기억(Remembering): 영웅의 이름을 가슴에 새기는 일 기억은 보훈의 출발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은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포화 속에서 조국을 지켜낸 6·25 참전 용사들, 이국땅에서 헌신한 월남전 장병들,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구하기 위해 불길과 재난 속으로 뛰어드는 영웅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사라집니다. 영웅들의 헌신을 시대와 세대를 넘어 대대손손 기억하는 것은 살아남은 우리들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기록(Record
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l <독립기관의 독립성과 책임성, 01> 독립기관도 국민 앞에서는 예외일 수 없다 - 독립성과 책임성, 이제는 함께 논의할 때다 - 민주주의는 권력을 신뢰하는 제도가 아니다. 권력을 견제하는 제도이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권력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해 왔다. 그래서 권력 위에 또 다른 견제장치를 만들었고, 그 견제장치마저 다시 감시하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삼권분립도 결국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독립기관은 누가 감시하는가?" 독립기관의 독립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독립성이 책임성마저 면제하는 면허가 될 수는 없다. ◆ 독립성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독립기관은 권력의 간섭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선거관리기관은 정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사법기관은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헌법은 이들 기관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성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독립성은 공정한 업무 수행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만약 독립성이 내부 비리나 부실 운영을 감추는 방패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본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선거는 민심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배를 띄우는 일이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뒤집어엎기도 한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는 이 오랜 격언이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과 정원호 캠프의 패배는 결국 ‘시민을 대하는 태도와 진정성’에서 갈렸다. 1. 오세훈의 승리 공식: 낮은 자세와 시민사회와의 연대 오세훈 시장의 당선 원동력은 한마디로 ‘겸손’과 ‘경청’ 이었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철저하게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화려한 수사나 일방적인 공약을 앞세우기보다, 서울시민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진정성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여기에 결정적인 힘을 보탠 것이 바로 서울시민회 등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지지였다. 오세훈 캠프는 관성적인 선거 조직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 사회의 뿌리이자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시민사회단체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서울시민회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시민단체들이 보여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지지는 단순한 표의 결집을 넘어, 오세훈 후보가 ‘시민과 함께하는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우리는 흔히 사도세자(장조)를 비극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합니다. 대중매체 속 그는 광증에 사로잡혀 칼을 휘두르거나, 아버지 영조의 그림자에 가려 신음하다 끝내 뒤주에 갇혀 숨진 ‘정신 질환자’ 혹은 ‘비운의 세자’로 소비되곤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행간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어두운 비극의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혹은 잊고 지냈던 굳은 절개와 깊은 효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도세자의 삶에서 본받아야 할 참된 정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권력의 비정함 속에서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인간적 도리와 신념입니다. 첫째, 비극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효심(孝心)' 사도세자의 효심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었습니다. 영조의 혹독한 질책과 끊임없는 불신 속에서도 그는 아버지를 향한 원망 대신 자신을 먼저 탓했습니다. 그가 남긴 기록과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자신을 가두려는 영조의 명 앞에서도 군신(君臣)의 의리와 부자(父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저항 없이 뒤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아버님, 아버님, 살려주소서!" 그 처절한 외침은 단순히 살려달라는 애원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끝내 인정받고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 이 상 수 | 도시의 수준은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높은 빌딩일까, 화려한 쇼핑몰일까, 아니면 넓은 도로와 첨단 시설일까. 물론 그런 것들도 도시 발전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진정한 도시의 품격은 의외로 작은 곳에서 드러난다. 골목 모퉁이의 작은 식당, 오래된 동네 빵집, 정성스럽게 손님을 맞이하는 작은 가게들. 필자는 오히려 그런 공간에서 한 도시의 인간적인 수준과 문화의 깊이를 느끼곤 한다. 왜냐하면 작은 가게에는 그 도시 사람들의 태도와 공동체의 온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은 가게는 단순한 생계 공간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작은 가게를 단순한 자영업의 영역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작은 가게는 도시의 일상을 지탱하는 생활 문화의 기반이다. 아침마다 인사를 건네는 반찬가게 주인, 늘 같은 자리에서 국밥을 끓이는 식당 사장, 손님의 취향을 기억해 주는 작은 카페. 이런 공간들은 단순히 물건과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생활의 공간이다. 대형 쇼핑몰에서는 효율을 느낄 수는 있어도 정까지 느끼기는 어렵다. 반면 작은 가게에는 사람 냄새가 있다. 도시가 삭막해지는 이유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반도체 시대, 우리는 다시 묻고 있다 - 오늘날 우리는 기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단순히 자본을 투자한 사람의 소유물인가, 아니면 노동자와 소비자, 국가와 사회가 함께 만든 공동체적 자산인가. 이 질문은 오래된 논쟁처럼 보이지만, AI와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다시 가장 첨예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 반도체 기업들을 둘러싼 성과급 논란과 노사 갈등은 단순한 임금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성과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숨어 있다. 과거 산업사회 초기에는 기업의 성과를 자본가의 결단과 투자 결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실제로 공장을 세우고 위험을 감수한 것은 자본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첨단산업은 과거와 전혀 다른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오늘날 반도체 기업 하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 국가의 전력망과 용수 인프라, 세금 감면과 연구개발 지원, 대학의 공학교육, 숙련 노동자의 기술 축적, 협력업체 생태계, 소비자의 시장 신뢰가 모두 결합되어야 한다. 단순히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의 힘만으로 세계적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습니다. 어떤 인연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지만, 어떤 인연은 마음 깊은 곳에 가만히 내려앉아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기도 합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인 열쇠는 바로 ‘상대에 대한 존중’ 입니다. 존중은 단순히 예의를 차리는 표면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상대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그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침묵의 선언입니다. 우리가 삶의 밭에 ‘존중’이라는 씨앗을 뿌렸을 때, 과연 우리 삶에는 어떤 풍요로운 열매가 열릴까요? 1. 관계를 빛나게 합니다. 존중은 투박한 원석 같던 인간관계를 눈부신 보석으로 다듬어냅니다.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인정할 때, 관계의 마찰음은 아름다운 화음으로 변합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만날 때, 그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바래지 않고 조용히 빛을 발하게 됩니다. 2. 신뢰를 키워줍니다. 신뢰는 말만으로 쌓이지 않습니다. 나를 진심으로 존중해 주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방어벽을 내리고 솔직해질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내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 마음과 마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김필용 | 오늘 우리는 겨레의 영원한 스승이신 세종대왕 탄신 629돌과 스승의 날을 동시에 맞이했습니다. 600여 년 전, 백성이 글을 몰라 제 뜻을 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한글을 창제하신 대왕의 정신은, 오늘날 정보의 장벽을 허물고 인류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인공지능(AI) 시대의 가치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1. 지식의 민주화: 한글과 AI의 공통 분모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당대 최고의 ‘지식 혁명’이었습니다. 일부 권력층이 독점하던 문자를 백성에게 돌려줌으로써 정보의 격차를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 했던 그 마음은, 복잡한 데이터와 기술을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현대 AI의 지향점과 닮아 있습니다. AI는 이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전 세계 지식을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번역하며 '언어의 장벽'마저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2. 가르침의 진화: 지식 전달자에서 삶의 이정표로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는 ‘교육’의 의미를 다시금 새깁니다. 방대한 지식을 학습한 AI가 정답을 제시하는 시대에, 인간 스승의 역할은 더욱 고귀해졌습니다. 단순한 정보의 전수가 아니라, AI가 내놓은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