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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비판하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구한다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③>

 

비판하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구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비판’은 종종 오해를 받는다. 비판은 불만, 반대, 발목 잡기라는 말로 치환되고, 때로는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행위로 낙인찍힌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비판은 결코 파괴가 아니었다. 오히려 권력이 길을 잃지 않도록 붙드는 안전장치였고, 시민이 시민으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었다.

 

 

권력은 본성상 집중되려는 성향을 지닌다. 선의로 출발한 권력이라도 견제가 사라지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시작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제도적 견제만이 아니다. 법과 규정은 최소한의 울타리일 뿐, 그 울타리가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힘은 시민의 감시와 질문이다. 비판 없는 권력은 자신을 시험받지 않기에 쉽게 오만해진다.

 

그럼에도 많은 시민이 비판을 주저한다. “지금은 비판할 때가 아니다”, “괜히 문제를 키우지 말자”, “전문가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말이 익숙하다. 이런 태도는 겉으로는 안정과 협력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판단을 유예하는 선택이다. 판단을 미루는 동안 결정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시민은 점점 관객의 자리로 밀려난다.

 

비판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의 비판은 대안을 포함한 질문이다. 왜 이 정책인가, 다른 선택지는 없는가, 그 결정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를 묻는 행위다. 이 질문이 반복될 때 정책은 정교해지고, 권력은 설명의 의무를 갖게 된다. 설명해야 하는 권력은 독주하기 어렵다.

 

문제는 비판이 설 자리를 잃을 때 벌어진다. 비판하는 시민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몰리고, 질문이 ‘발목 잡기’로 치부되면 사회는 빠르게 경직된다. 내부의 경고음을 제거한 조직이 작은 균열을 방치하다가 한순간에 붕괴하듯, 비판을 억압한 사회는 위기 앞에서 대응 능력을 상실한다. 그때 가서 쏟아지는 후회는 이미 늦다.

 

비판의 힘은 소음이 아니라 지속성에서 나온다. 일회성 분노나 감정적 비난은 쉽게 소진되지만, 근거를 갖춘 질문과 일관된 문제 제기는 제도를 움직인다. 민주주의는 영웅의 결단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평범한 시민이 반복적으로 묻는 “왜”와 “어떻게” 위에서 작동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비판하는 시민을 보호하는 문화다. 사회가 성숙할수록 내부 비판자를 적이 아니라 자산으로 여긴다. 불편한 말을 하는 사람 덕분에 공동체는 방향을 수정할 기회를 얻는다. 침묵은 갈등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축적한다. 그리고 축적된 갈등은 언젠가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

 

민주주의는 박수로 유지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질문으로 숨 쉬고, 비판으로 건강을 회복한다. 비판하는 시민이 많을수록 사회는 시끄러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소음은 붕괴의 전조가 아니라, 정상 작동의 증거다. 민주주의를 구하는 힘은 조용히 따르는 데 있지 않다.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묻고, 확인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시민의 태도에 있다. 끝.

 

<다음 칼럼 예고>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④> “침묵하는 다수는 중립이 아니다”

 

<관련칼럼>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①> 국민들이 ‘앤트밀 현상’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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