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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다수는 중립이 아니다

- 방관의 정치적 책임, ‘아무 말도 하지 않음’의 선택성 -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④>

 

침묵하는 다수는 중립이 아니다

- 방관의 정치적 책임, ‘아무 말도 하지 않음’의 선택성 -

 

이 상 수 / 칼럼니스트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괜히 나섰다가 손해 보고 싶지 않다.”

 

이 말들은 얼핏 중립처럼 들린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침묵은 결코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언제나 이미 힘을 쥔 쪽을 돕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선택은,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사 표시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참여를 전제로 작동한다. 참여란 반드시 거리로 나서는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질문하고, 판단하고, 의견을 드러내는 최소한의 행위가 민주주의의 산소다. 이 산소가 부족해질 때, 사회는 겉으로는 조용해지지만 내부에서는 서서히 숨이 막힌다.

 

침묵하는 다수가 생겨나는 이유는 이해할 만하다. 첫째, 비용의 문제다. 목소리를 내면 피곤해지고, 공격받을 수 있고,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다. 둘째, 무력감이다. “내가 말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은 많은 시민을 관객으로 만든다. 셋째, 책임 회피의 심리다. 침묵하면 판단의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가장 취약해진다. 권력은 비판이 사라진 공간에서 가장 빠르게 확장된다. 침묵은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한쪽으로 기울게 만든다. 다수가 말하지 않을수록, 소수의 목소리는 전체의 의지처럼 포장된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동할 때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열성 지지자보다 침묵한 다수였다. 소수의 과격한 주장도, 다수가 이를 제지하지 않으면 정책이 되고 제도가 된다. 방관은 무해한 태도가 아니라, 결과에 대한 간접적 동의다.

 

특히 위험한 침묵은 “아직은 지켜보자”라는 말로 시작된다. 초기의 작은 불공정, 사소한 원칙 훼손, 약자를 향한 배제의 언어가 등장했을 때, 다수는 대개 침묵한다. 그 침묵은 신호가 된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신호 말이다. 그렇게 기준은 조금씩 낮아지고, 나중에는 되돌리기 어려운 지점에 이른다.

 

침묵의 문제는 책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극적으로 행동한 사람은 평가와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은 흔히 비켜 서 있다. 그러나 결과가 나왔을 때 그 사회를 구성한 모든 시민은 그 결과를 함께 감당한다. 침묵은 책임을 피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것은 선택이고, 선택은 언제나 결과를 낳는다. 시민에게 요구되는 것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다. 모든 사안에 정답을 가질 필요도 없다. 다만 부당함을 보았을 때 외면하지 않는 태도, 질문을 던질 때 함께 귀 기울이는 자세, 침묵이 편할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는 소수의 용기 있는 목소리로 시작해, 다수의 동의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 동의는 반드시 박수일 필요는 없다. 침묵을 거두는 것, 그것만으로도 민주주의는 다시 숨을 쉰다. 침묵하는 다수는 중립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쪽에 서 있다. 끝.

 

<다음 칼럼 예고>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⑤> “질문을 멈춘 사회는 퇴보한다”

 

<관련 칼럼>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①> 국민들이 ‘앤트밀 현상’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https://www.kjbn.kr/mobile/article.html?no=7597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②> 왜 우리는 맹목적 추종에 빠지는가

https://www.kjbn.kr/mobile/article.html?no=7607

 

<앤트밀현상과 민주주의 ③> 비판하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구한다

https://www.kjbn.kr/mobile/article.html?no=7653

 

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이상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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