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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판사의 ‘양심’, 국민은 어디까지 기대해야 하는가

- 양심이 믿음의 대상이 아닌, 검증의 대상이어야 할 이유 -

<칼럼>KBN 한국벤처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상수 |

 

<사법신뢰회복 시리즈 ⑧>

 

판사의 ‘양심’, 국민은 어디까지 기대해야 하는가

— 양심이 믿음의 대상이 아닌, 검증의 대상이어야 할 이유 -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양심에 기대어 말해 달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대체로 거짓 없이 사실을 말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최소한의 진실성을 지켜 달라는 사회적 약속이 그 말 속에 담겨 있다. 그러나 사법의 영역에서 사용되는 ‘양심’이라는 단어는, 그 일상적 의미와는 다른 오해를 낳아 왔다.

 

 

판사들은 판결문에서 흔히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사법 독립의 상징처럼 반복되어 왔지만, 동시에 시민에게는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과연 국민은 ‘판사의 양심’을 어디까지 기대해야 하는가. 판사의 마음속 선의까지 믿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보다 다른 기준이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은 판사의 ‘내면적 도덕성’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위험한 기대다. 개인의 선함에 의존하는 사법은 운에 맡기는 사법이 되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재판을 맡으면 정의가 실현되고, 그렇지 않으면 왜곡될 수 있는 구조라면, 그 사회의 법치는 이미 불안정하다.

 

헌법이 말하는 ‘판사의 양심’은 감정이나 개인적 정의감이 아니다. 그것은 법률을 자의적으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직업적 양심이며, 외부 압력과 내부 조직 논리로부터 독립하겠다는 헌법적 책무에 가깝다. 다시 말해, 양심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조건이 갖춰질 때 비로소 작동하는 기능이다.

 

그렇다면 국민은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첫째, 논증으로 드러나는 양심이다. 왜 이 증거를 채택했고, 왜 저 주장을 배척했는지, 왜 이 법리를 선택했는지가 판결문 속에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양심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설명과 논증을 통해서만 확인될 수 있다.

 

둘째, 제도에 의해 보호되는 양심이다. 소신에 따른 판단이 인사상 불이익이나 조직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양심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양심을 요구하면서 보호하지 않는 제도는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뿐이다. 양심은 용기가 아니라, 제도 속에서 일상적으로 작동해야 할 기준이다.

 

셋째, 검증 가능한 양심이다. 판결은 상급심과 학계, 시민 사회의 비판을 견뎌야 한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판단은 양심적일 수 없다. 오히려 공개적 검증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논증이 있을 때, 비로소 그 판결은 ‘양심에 따른 판단’이라 불릴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앞서 논의한 사법개혁의 핵심 조건들이 다시 연결된다. 인사권의 분산은 양심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고, 판결의 설명 책임은 양심을 시민 앞에 드러내는 방식이며, 양심적 판사를 보호하는 제도는 그 양심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안전장치다. 이 셋은 분리된 과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다.

 

사법 신뢰는 ‘선한 판사’가 많아질 때 회복되지 않는다. 사법 신뢰는 선하지 않아도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게 하는 제도가 설계될 때 회복된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누구든지 법 앞에서 같은 판단에 이르도록 만드는 구조를 만든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국민은 판사의 양심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판사의 양심이 검증되고 보호되며 설명될 수밖에 없는 사법 구조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사법 신뢰 회복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끝.

 

<관련칼럼>

<사법신뢰회복시리즈 ①>

법은 왜 존재하는가?

https://www.kjbn.kr/mobile/article.html?no=7436

 

<사법신뢰회복시리즈 ②>

판사 인사권 분산이 사법 신회 회복의 출발점이다.

https://www.kjbn.kr/mobile/article.html?no=7441

 

<사법신뢰회복시리즈 ③>

설명 없는 판결은 정의가 아니다

https://www.kjbn.kr/mobile/article.html?no=7462

 

<사법신뢰회복시리즈 ④>

양심의 판사를 보호하지 않는 사법은 오래가지 못한다

https://www.kjbn.kr/mobile/article.html?no=7467

 

<사법신뢰회복시리즈 ⑤>

사법개혁, 무엇부터 사회적 합의를 이룰 것인가

https://www.kjbn.kr/news/article.html?no=7470

 

<사법신뢰회복시리즈 ⑥> 사법개혁은 왜 번번이 좌초되는가

https://www.kjbn.kr/news/article.html?no=7501

 

<사법신뢰회복시리즈 ⑦> 입법부는 사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https://www.kjbn.kr/mobile/article.html?no=7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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